아루츄방 에비츄

자신에게 즐겨 마시던 맥주 '에비스'에서 따온 '에비츄'라는 멋진 이름도 붙여주고, 밥도 주고 재워주기까지 하는 주인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이 작고 갸녀린 햄스터는 주인님의 민망한 팬티도 빨래하고 먹다남은 음식이 가득한 그릇 설거지도 도맡아하며 집안 일에 앞장선다. 과연 이 정도면 단순한 애완동물이라 치부하기 힘들 정도이다. 뿐인가, 간간히 주인님 회사에 찾아가 주인님한테 추근덕거리는 남자사원은 없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집에 걸려온 음란전화를 대신 받아 단호히 대처하기도 하니 재주꾼 햄스터라 부를만한, 아니 햄스터라는 분류 자체가 민망할 지경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재주가 어설픈 재주라는 것이 문제. 자기딴엔 부던히도 노력해 보지만 용량상 한계선이 뚜렷한 햄스터의 두뇌로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니 하루라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는 것이다. 모처럼 주인이 집에 남자친구를 끌어들여 다 큰 연인 만이 누릴 수 있는 깊고도 아늑한 한때를 보내고 있노라면 가차없이 달려들어 '그건 안된다'는 식의 철없는 간섭을 하다가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홍콩에 여행간 주인님 몰래 집에 다른 여자를 불러들인 사실을 '철딱서니없이' 고해바치다가 파국을 가져오기도 한다. 수난은 주인님에게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흥이 깨져버린 남자친구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나서는 길을 단호히 막아서다가 가차없이 발로 채여 벽에 부딪혀 피떡이 되어 버리는 등, 에비츄의 삶은 그의 기분을 몰라주는 인간들의 가혹한 보복성 폭력이 가득한 것이다.
성인여성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영역의 인기를 누려 일본에서 100만부 판매의 사랑을 받은 성인카툰 <아루츄방 에비츄>. 그런 원작을 바탕으로 지난 1999년에 가이낙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특성에 맞춰 심야 시간대의 성인지향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졌다. 다른 심야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10분이 안 되는 런닝타임 안에서 원작의 에피소드를 믹싱한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성인만화와 달리 유머를 방어벽 삼아 과감하고 자유로운 내용을 다룰 수 있던 원작인 만큼 애니메이션화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당시 안노 히데아키와 가이낙스는 '원작의 야한 대사와 장면을 최대한 재현한다'를 목표로 삼고 제작에 착수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완성된 결과물은 과연 심야의 성인 애니메이션으로 적합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팬시상품 캐릭터처럼 생긴 에비츄는 주인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매번 주인의 사생활의 은밀한 부분을 도려내는 듯한 문제성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다. 그런 헌신적 애정에 대해 돌아오는 것은 바닥에 피가 낭자할 정도의 구타 뿐, 그러나 에비츄는 그런 폭력에 굴하지 않고 매번 주인을 위해 팬티를 세탁하고 남자친구와의 성관계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진한 성적 개그를 구사하지만 <짱구는 못 말려>의 과감한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혹시 그림체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림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국내에서도 단행본으로 발매되어 인기를 끌었던 <OL 진화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 만화가 야한 내용이지만 남에게 소개하기에 민망치 않은 느낌을 주는 데에는 남성 중심적인 포르노 환타지와 달리 성생활을 구가하는 성인 여성들이 공감할만한 일상적 성생활의 개그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일상생활에서 남자친구와의 체위에 대해 햄스터에게 잔소리를 듣는 여성은 없겠지만) 보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여성을 성적 환상으로만 보는 자들이 만든 파렴치한 섹스 코미디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 에비츄가 내뱉는 무수한 성적 농담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동년배 친구들과 회사 비상계단이나 술집 구석에서 키득거리며 나눌 법한 평범한 내용들이다.(요즘같으면 MSN으로도 꽤...) 그런 평범함과 익숙함이 원동력이 되어 단행본 100만부의 사랑을 받은 것이고, 가이낙스의 힘을 빌어 애니메이션화에도 성공했던 것은 아닐까.
편하게 야하다면 재미있다. 일반적 이미지의 성인 애니메이션과는 대상도 전략도 스타일도 다른 성인 코믹 애니메이션 <에비츄>를 보면서 느낀 감상이다
작성자 : 이상언(e-Writer)
출 처 : 엔키노